사랑에 빠진 공주
글:라자발리 쿠드라코프, 그림:김성희
2017년 6월, 비룡소

A Princess who fell in love
text:Latzabali Kudratof ,illustration:Sung-Hee Kim
June.2017, Bir publishing

* 작업노트

무엇이 나이를 울리는가? Why does ‘Nai'(*tajik traditional flute) cry?
-‘사랑에 빠진 공주’의 원제

2016년, 광주의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공모한 중앙아시아 이야기그림책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서 완성한 책이다.
프로젝트당시 여러가지 원고를 받았는데, 여러이야기가 전하는 메세지가 비슷비슷하여 고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유독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다른 이야기와 다르게 슬픈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받았던 중앙아시아의 이야기들은 과거 한국에서와 그다지 다르지 않게 ‚효, 충성, 선생님말 잘 듣기’등의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선택한 ‚무엇이 나이를 울리는가’라는 글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여자 주인공은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스스로의 마음이 가는대로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단편적으로 본다면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어른의 뜻을 거스르면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말미에 죽어버린 공주를 꼭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여러 번 읽을 수록 나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선물’처럼 곱게 아버지의 성에서 자란 공주는 결국 병이 난다. 그래서 그 병 덕에 성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고 ‚나이’라는 피리소리를 듣게 되고, 목동을 알게되고, 그를 사랑하는 경험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평생 자신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공주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방법을 몰랐다. 그나마 소극적으로 비둘기로 변해 사랑을 전하려 하지만 목동은 알아듣지 못한다. 너무도 당연하게도 서로 다른 언어와 모습으로는 진심을 전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깨어지고 끊어지는 사랑과 인연이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목동은 얼떨결에 공주의 사랑을 받게 되었으나 그 사실도 알지 못하고 왕에게 한마디 해명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죽임을 당하고 만다. 권력이 무책임하게 두 사람을 죽인 셈이다. 그러나 공주의 죽음은 의미없지는 않았다. 그녀는 비록 자신의 바램을 성취하지는 못했으나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 밖으로 스스로 나아갔으며 그로 인해 세상에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를 선물하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이야기를 읽을 사람들에게 이야기에서 표면적으로 얻을 수 있는 ‘권력에 거슬러서 징벌을 받는다’ 대신 ‘서툴러도 스스로 결정하여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은 아름답다’라는 메세지를 그림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
사실 당시에 내 자신이 심적으로 너무 힘든 일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내 자신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에는 아버지왕, 딸 공주 그리고 목동의 세 등장인물이 나온다. 나는 작업 전 각각의 인물에게 색을 정해보았다. 그 전에 타지키스탄의 전통 복식을 조사했는데, 전통 의상의 색깔을 참조했다. 타지키스탄의 여성 복장에는 주로 붉은 색이 많았기에 숨은 열정을 갖고 있는 공주에게 붉은 색을, 남색 계통이 많은 남자 귀족 복장을 참고하여 왕에게는 ‚터키색’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푸른 색을, 그리고 제3자라고 할 수 있는 목동에게는 갈대와 고원의 색인 노란색과 채도 없는 회색을 지정했다. 그런 후에 인물과 배경의 색을 조정해서 장면의 분위기를 전환했다.

 

첫 장면에서 왕의 공간은 푸른 색으로 차가우며, 내부는 촘촘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안에서 공주는 자기만의 붉은 공간에 갇혀있다. 나는 공주의 마음을 좀더 구체화 시켜서 꽃병과 노란새로 표현했다. 공주의 껍데기인 붉은 꽃병은 푸른 벽감(*벽을 오목하게 파내어 만든 공간, 그 안에 장식물등을 넣어둔다)에 갇혀 있지만, 공주의 마음인 노란 새는 성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타지키스탄은 국토의 대부분이 세계의 지붕이라고 하는 파미르 고원으로, 그 아래는 나무가 많지 않은 초목지인데 그 곳에서 유목민들이 살아가고, 그 위의 높은 산맥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어 항상 하얗다고 한다. 병에 걸린 공주는 붉은 마차를 타고 목동의 공간인 들판으로 떠나게 되고, 그 위에서 뾰족하고 날카로운 붉고 푸른 산맥이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다. 잠시 쉬어가기 위해 쳐 놓은 붉은 천막에서 나온 공주는 나이를 부는 목동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푸른 색이 가득하던 벽감들 중 공주의 화병이 있는 곳에 붉은 빛이 차며 꽃병 안에서 꽃이 피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꽃은 7번째 장면에서 온갖 색과 모양으로 가득한 꽃과 열매를 피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채 멀리에서 회색빛 목동새가 지저귀고 이제까지 노란 관을 쓰고 있던 공주새가 관을 벗고 그에게 날아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주는 아직(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간에)자신이 만들어놓은 단정한 바닥과 붉은 철장 안에서 꽃병처럼 앉아있다. 다만 식물의 줄기만이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쓸 뿐이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회색 비둘기로 변한 공주는 그 철장을 벗어나 목동에게로 날아간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바없는 목동은 비둘기를 죽이게 되고 멀리 푸른왕이 보낸 자객이 그 목동을 죽인 까닭에 이제 부숴진 철장과 떨어진 나뭇잎 위에는 죽음이 흐른다.

푸른 산맥 아래에 눌려 흩어진 붉은 피 위에서 갈대가 하나 둘씩 자라서, 마지막 장면에서 그 갈대로 만든 나이로 사람들이 연주를 한다. 중앙아시아 지방에서는 영묘(무덤) 건물지붕이 돔형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 공주의 화병이 있는 건축물의 지붕이 첫번째 왕의 성의 지붕과는 다른 것이다. 영묘 안에서 공주의 꽃병이 붉은 불꽃 안에 튤립을 피우고, 공주의 영혼인 노란새가 눈물을 흘린다. 공주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자 했으나, 나약하고 부족한 탓으로 자신의 의지에 반대하는 권력혹은 관습의 힘으로 인해 죽고 말았다. 무책임한 권력과 나쁜 관습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공주의 붉은 색이 이제는 튤립이 되어 황량해보이던 들판을 아름답게 채우고 있으니, 공주는 죽었어도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자료조사 및 문화체험을 위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을 때 이슬람 세밀화의 구도를 무척 인상깊게 보았고, 이번 그림책을 표현하면서 세밀화에 대해 좀 더 공부를 하고 그것을 구현해보고 싶었다. 이슬람 세밀화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페르시아에서 부터 시작된 화풍으로 구도는 약 45도 각도를 이용해 기하학적이고 내, 외부가 입면도 형식을 사용하여 그림 안에 혼재되어 표현된다. 그림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젊게 표현되어 있으며, 얼굴의 3/4가 보이도록 그려져 있고, 반면에 몸통은 양쪽 팔이 다 보이도록 더 전면쪽으로 돌아져 있다. 어찌보면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비슷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은 정교하게  각기 다른 문양들로 그려져있고, 배경의 건물이나 식물들 역시 섬세한 문양들로 표현되어 있다.

내가 그린 그림들에서 배경은 세밀화를 관찰하고 공부해본대로 벽체를 45도 각도로 기울이거나, 되도록 직선을 이용하려고 했고, 물체의 내부를 아라베스크 문양, 적벽돌 혹은 고르게 채워져있는 나뭇잎 등의 일정한 패턴을 채우고, 내 외부가 입면도를 매개로 혼재되는 방식으로 표현해보려고 했다.

비록 공주를 사랑했으나 냉정하고 강압적인 부모였던 왕이나 그 아래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자라난 공주는 불완전한 의미에서 되도록 옆모습만 보이도록 그렸고, 반면에 교육은 받지 않았어도 자유롭게 자랐을 목동은 세밀화에서 처럼 얼굴의 3/4정도가 보이도록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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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거의 처음으로 공판화의 느낌이 나는(아마도…?) 디지털 방식(채색)으로 작업했다.
촉박한 작업일정에 맞을 거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방식인데, 실제로는 처음 써보는 타블렛이 손에 완전히 익지 않은데다가 당시 내가 아는 포토샵 기술이 그다지 많지 않아 새로 공부하면서 작업하느라 판화찍는 것 보다 더 힘들었다. 그림을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다. 그래도 고생한 덕분에 앞으로는 이런 방식의 디지털 작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업하면서 단순히 기술 뿐만 아닌 다양한 분야에 대해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