땍때굴
글: 김이구, 그림: 김성희
2016년 4월, 창비

Rumbling
text: I-Gu Kim /illust: Sung-Hee Kim
2016, Changbi pub

*작업노트

사람은 눈을 통해  움직임을 인식하는데, 그림은 움직이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다. 그러나 인간은 상상을 할 수 있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연속적인 그림들로 그 순간을 이어서 더 큰 범위의 움직임. 즉 서사를 만들고,
다양한 조형요소를 통해 정지한 그림 속에서 눈으로 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해보았다.

보통 책으로 만들어지는 글은 다양한 내용과 장면들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활자를 읽으며 장면을 상상하고 글의 분위기를 느끼며 책을 이해하게 된다. 나는 ‚독자가 스스로 장면을 상상함’이 글과 동영상을 구분지을 수 있는 중요한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삽화의 매력은 그림 한 장으로 독자가 나름의 상상을 펼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삽화작업을 할 때 주로 먼저 글을 여러번 읽어보고 이해해본 후에 글 속의 어떤 장면과 그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결정하고 작업을 시작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삽화가 분량의 글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면, 이 책의 그림들은 그간 작업한 삽화들과는 다르게 글이 아닌 하나의 단어를 설명한다. 즉, 글작가가 제시하는 일련의, 소리와 움직임을 표현하는 단어를 내가 그림으로 그 테두리를 넓혀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 대부분의 경우와 다르다. 나는 무엇보다 이런 면이 흥미롭게 느껴져서 이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글은 관계가 잘 없어 보이는 단어들의 묶음들이었다. 그러나 그림책은 그림 사전과는 달라야 한다. 그림들이 함께 엮여져서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그림들은 비로소 그림책이 된다. 그래서 나는 주어진 단어들을 토대로 각 묶음마다 이야기를 만들어 넣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책을 읽게될 주 독자인 취학전 연령의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지루함 없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하면서 제한된 모티브와 색을 사용하여 그림을 단순 명료하지만 따뜻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내도록 하였다.

의성어 모음집 땍때굴에서는 두 마리 새끼 멧돼지와 새가 4계절을 지내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렸다.봄의 청보리밭을 지나 날아온 새 한 마리는 봄의 숲 속에서 아기 멧돼지를 만나고 함께 여름의 장마철과 가을의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조용해진 겨울의 숲 속. 이제 조금 더 큰 새끼 멧돼지들이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며 계속 앞으로 걸어간다.